‘특목고 열풍’ 방치땐 유치원생까지 과외번질것

2006. 4. 13. 15:54카테고리 없음

‘특목고 열풍’ 방치땐 유치원생까지 과외번질것
2004/05/28 오후 8:24 | 교육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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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교육이 부동산값 상승이나 내수부진의 ‘범인’, 적어도 ‘종범’으로 지목되면서 공교육의 시장화를 주장하는 발언들이 부쩍 늘었다. “우수한 교육여건을 찾아 강남으로 몰리다 보니 부동산값이 오르고 사교육비 증가로 가계 여력이 바닥나다 보니 경기침체가 오래간다”는 식의 진단들이다. 처방으로는 으레 고교 평준화 해제나 특수목적고, 자립형 사립고 확대가 나온다. 해마다 입시철이면 되풀이되는 논쟁이지만 올해는 경제부총리, 서울대 총장, 서울시장 등 비중있는 인물들이 비슷한 처방을 내리며 가세하는 형국이다.

이런 주장이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유인종 서울시교육감은 쐐기를 박고 나섰다.

유 교육감은 “이는 ‘상위 5%에게 도움이 된다면 우리 사회가 30년 전 입시지옥으로 되돌아가도 좋다’는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지금의 사교육 과열은 특목고 때문이고 특목고는 100% 실패했다”며 “여기에다 서울에 자립형 사립고까지 만들면 전국에 고입 재수생이 쌓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 평준화를 풀어 명문고를 육성하면 사교육비가 줄어들 것이란 주장이 많이 나온다.

= 왜 그리 쉽게 역사를 잊어버리는지 모르겠다. 30년 전 신문을 봐라. 바로 사교육 과열 때문에 ‘평준화’를 도입한 것이다. 중학교·고등학교가 서열화돼 있고, 이 서열의 꼭대기에 있는 좋은 중·고교에 가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과외하고, 중입·고입 재수생이 증가하면서 교육망국론이 나오니 평준화 도입한 것 아닌가.

- 평준화된 지금도 사교육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 아니다. 평준화 제도에 금이 갔기 때문에 사교육 과열이 나온 것이다. 바로 특목고 때문이다. 외국어나 과학 영재를 기르는 애초 취지가 바래면서 특목고는 지금 유능한 대입기관이 돼버렸다. 여기에 가려고 초등학교 4~5년 때면 특목고 진학반을 꾸려 사교육을 시킨다. 단순히 명문고가 돼버린 특목고가 사교육비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이다. 이대로 두면 특목고 진학 열기는 곧 유치원생에게까지 내려갈 것이다.

- 서울시에서 뉴타운 등에 특목고 신설계획을 발표했는데

= 예술고나 체육고라면 얼마든지 허가하겠다. 그러나 외국어고나 과학고는 안 된다. 뉴타운엔 일반계 공립학교 신설할 땅도 없는데 무슨 특목고인가. 더구나 지금의 특목고는 수술해야 한다. 특목고는 100% 실패한 제도다. 어학시험으로만 학생을 뽑으라고 했더니 외국어로 수학시험을 낸다. 면접에서도 외국어로 수학문제를 묻는 식이다. 외국어 인재를 기르는 게 목적이 아니라 국·영·수 잘하는 학생을 뽑아 명문대 의대·법대 많이 보내는 게 요즘 특목고다.

- 유 교육감의 반대로 서울엔 자립형 사립고가 없다. 신설 계획은

= 서울은 지방과 다르다. 서울에 자립형 사립고를 만들면 특성화학교가 아니라 명문 귀족학교가 되고 여기 들어가기 위해 전국의 중학생들이 줄을 설 것이다.

고입 재수생이 늘어나는 등 입시지옥이 된다. 내 임기 동안엔 계획이 없다. 여건도 마찬가지다. 재정자립도를 갖춘 사립고가 없다. 당시 이상주 교육부 장관은 경기도에도 자립형 사립고 만들어 보려고 길병원에 투자를 부탁하는 등 애를 많이 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최근에 서울 중동고의 자립형 사립고 전환 얘기가 나오는 모양인데, 말도 안 된다. 교육청이 올해 중동고에 지원한 재정결함 보조금이 무려 20억원이다. 이런 형편에 무슨 자립고인가.

- 왜 해마다 평준화 논란이 일어난다고 보는가

= 30년이나 된 논란인데, 특히 입시철만 되면 교육정책을 흔드는 논리가 많이 등장한다. 정부도 이때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명분은 이리저리 둘러대지만 평준화 해제론자들은, 솔직히 말해서 상위 3~5%를 위한 엘리트 교육 제도를 도입해 달라는 것이다. 옛날 경기고 만들자는 말이다. 이건 절대 안 된다. 일부 학부모들이 심리적으로 ‘예스’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회발전 과정이나 인류학적 측면에 비춰보면 이건 후퇴다. 민주적이지도 않다. 그 5%를 위해 나머지 95%가 희생되는 그런 교육정책을 펼 수는 없다. 이 3~5%가 누군인가 기자, 판검사, 교수들 아닌가 그러면서 국민의 목소리인 양 포장하고 있다. 교육학적으로도 그렇다. 고교 진학률이 10~30%일 때는 학교간 차별로 엘리트를 키우는 것이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100%다. 이 단계에서 고교 서열화는 계층 갈등만 불러일으킨다.

-강남 쪽의 고액 과외나 학원에 대해 단속하고 있는데 학원들의 불만도 많고 효과는 높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세가지 큰 변화가 생겼다. 첫째, 10시 이후의 심야 학원이 싹 없어졌다.

둘째, 고액과외 사이트가 없어졌다. 셋째, 개인과외 교습료 변경이나 강사채용 신고 등 적법한 절차변경이 수백건씩 들어오고 있다. 밝히지 않았지만 목동과 상계동 쪽도 동시에 단속에 들어갔다. 고액 불법과외 많이 잡았고 곧 발표할 것이다. 고액 과외, 특히 족집게 논술 학원·과외만 단속하기 때문에 학원들도 불만 가질 필요 없다.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대입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대입제도가 바뀐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대학들이 바뀌고 수능이 쉬워져야 한다.

특히 고교에서 가르친 내용에서 문제가 나와야 한다. 수능이 어려워야 변별력이 생긴다고 하는데 총점 변별력은 필요 없다. 특정 분야만 잘하면 뽑아야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들은 아직도 모든 과목을 잘하길 기대한다.

3년 전 우리나라 어떤 과학고 학생 65명 가운데 63등 하는 학생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엠아이티)에서 장학생으로 뽑아갔다. 물리와 수학을 아주 잘했기 때문이다. 그 얼마 전에는 재미동포 2세가 대학 입학자격 시험인 에스에이티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적이 있다. 그 동포 학생은 하버드대학 의대에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사회봉사 실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버드 의대는 그 학생에게 “의사에게는 봉사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아마 다른 대학 의대에서도 당신을 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것이 변별력이다. 총점 성적에 의한 변별력은 가짜다.

글 황순구 기자 hsg1595@hani.co.kr